클로버밭
고도를 기다리며 본문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포조와 럭키 그리고 고도
사뮈엘 베케트의 이야기
1. 언어에 대해서
그는 아일랜드인으로 영어,프랑스어로 번갈아가며 작품을 쓰면서 자신의 작품들을 영어에서 프랑스어로,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직접 번역했다. 이처럼 두 가지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한 것은 그의 뛰어난 언어 능력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그는 그 이유를 <모국어보다 습득해서 배운 언어가 스타일 없이 쓸 수 있어 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그의 작품 세계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그는 작중 인물들이 구사하는 말들이 국경과 특정 언어의 뉘양스를 뛰어넘어 < 그 누구도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를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모국어란 그 말을 쓰는 인간과 합치되어 너무나 친근하면서도 동시에 알 수 없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는 타국어로 쓰거나 번역하는 가운데 모국어의 고정된 첫번째 의미에서 벗어나 언어의 정수에 도달할 수 있는 이야기가 가능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베케트에게 있어서 말은 그 누구도 아닌 모든 인간의 존재를 지탱하는 도구이자 존재의 핵심이다.
2. 고도에 대해서
그는 보클루즈에서 숨어 살며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자신의 상황을 인간의 삶속에서 내재된 보편적인 기다림으로 작품화한 것이다.
미국에서의 초연 때 연출자 알랭슈나이더가 베케트에게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어쨌건 고도에 대한 정의는 구원을 갈망하는 관객 각자에게 맡겨진 셈이다.
3. 기다림에 대해서
그들의 기다림은 어제 오늘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들 자신도 헤아릴 길이 없는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림이 시작된 듯하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죽이기 위해 지칠대로 지쳐있는 그들은 온갖 노력을 다해본다.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하여, 여전히 살아 있음을 실감하기 위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말을 하는 것이다. 지루함과 초조, 낭패감을 극복하기 위해 끝없이 지껄이는 그들의 광대놀음, 그 모든 노력은 고도가 오면 기다림이 끝난다는 희망 속에 이루어진다.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그건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라는 인식을 두 사람은 서로게에 일꺠우며 확인한다.
작가의 언어를 다루는 태도가 굉장히 흥미롭다. 영어를 프랑스어로 쓰고 프랑스어를 영어로 쓰는 순간에서 모국어로써의 습관이 된 스타일을 죽일 수 있는 것인가? 작가는 그게 가능했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되었겠지만 언어에 대한 시도와 시선은 기억에 남을 듯하다.
결국 고도는 오지 않았다. 책장을 넘기면서 고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예감이 왔다. 그리고 신기하게 고도의 존재에 대해 구체적인 추측이 들지 않았다. 책 속에서는 고도가 사람인 것 마냥 묘사되어있지만 고도라는 것은 불명확하고 신비한 과학적이고 우주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또한 무한한 기체처럼 닿는 사람에 따라 고도의 의미는 무한해질 것 같다. 고도가 무엇이든 간에 고도를 기다리는 두 방랑자의 태도에 집중해게 된다. 작품해설에서 인상적인 구절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하여, 여전히 살아있음을 실감하기 위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말을 하는 것이다' 이다.